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망디 상륙작전 (문단 편집) === 피의 오마하 해변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attachment/1944_06_06_OMAHA_NARA_Photo_1280x.jpg|width=100%]]}}} || >'''이 해안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이미 죽은 자와 곧 죽을 자이다.''' >- 미군 제1보병사단 16연대장, 조지 테일러 오마하를 수비하던 독일군 제352 보병사단은 원래 태생이 [[동부전선]]에 투입될 보병사단으로 창설되었다가 임시로 방어임무를 맡은 것이었던 만큼 전력 면에서 정예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전투경험이 부족해 표면적인 전력에 비해 전투력이 높은 사단은 아니었다. 352 보병사단은 1943년 11월 창설된 이후로 부대 편성과 훈련에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고 부대 편성과 훈련이 어느 정도 완료되자 바로 해안 방어임무에 임시로 투입된 사단이라 대규모 전투에 참전한 적이 없는 상태였다. 물론 이미 해체된 321 보병사단의 잔존병력 상당수가 352 보병사단에 합류했고 다른 사단에서 전출되어 온 인원들도 있어 베테랑 병사들도 일부 있기는 했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전투경험이 상당히 부족한 상태였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연합군이 상륙한 지형과 노르망디의 지형이 비슷한 것을 알아본 롬멜의 혜안으로 인해 해안 방벽이 그나마 제대로 설치된 곳에서 방어를 하고 있었다. 미 육군의 오마 브래들리 장군은 사전 포격으로 해안의 독일군을 가루로 만들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그러면서 "제군은 특등석 링 앞자리에 앉아서 관람하는 셈"이라는 식의 호기로운 말을 했는데 정작 해군측 존 홀 소장의 의견은 전혀 달랐다. 그는 이때 행해진 사전 포격과 공습이 매우 부족한 규모라 생각하여 불만스러워 했고 '''역사상 가장 큰 상륙작전에 이처럼 부족한 함포 사격을 지원한다는 것은 범죄행위'''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이건 미친 짓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미친 짓이였죠. 그리고 우리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전차 26대가 차례로 가라앉았으니까요. 누가 그따위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비겁한 짓이었습니다.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결정이었으니까요. 그들은 해변까지 전차를 싣고가는 게 겁이 났던 겁니다. >-영국군 해군 소령 로건 스콧 보덴 상륙 당시 미군 병사들이 처한 상황을 묘사하자면, 몇백 미터를 넘는 거리에 각종 장애물들인 [[체코 헷지호그]]나 벨기안 게이트, 철조망에 1700개의 대인지뢰까지 설치된 해안을 수천의 병력이 득실거리면서 [[MG42]]와 105mm 포 사격 등 무차별적인 사격을 뒤집어쓰고 지나가야 했던, 그야말로 [[헬게이트]]였다. 썰물 시 상륙을 진행한 것은 독일군이 상륙주정에 피해를 주기 위해 밀물 시 딱 수면 높이까지 오는 위치의 나무말뚝이나 체코 헤지호그를 심고 그 위에 지뢰를 설치해 놓았기에 이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이는 독일군 해안벙커가 무력화되었을 시를 가정한 것이었다. 실제로 연합군은 해군 함정과 공군 폭격기를 동원해서 독일군의 해안 거점에 공습을 퍼붓고 포격을 가했지만 큰 피해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도리어 상륙 병력들의 돌파거리만 늘어나게 되었다. 오마하의 경우 썰물에 상륙했음에도 수많은 보병과 [[M4 셔먼|전차]]가 해변에 수장된 건 덤이다. 그 때문에 화력 지원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보병들이 큰 피해를 봤다. 그나마 보병과 동시에 상륙할 능력이 있었던 [[수륙양용전차]](DD 전차) 서른 대도, 전차 양륙함들이 포격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해안에서 먼 곳에서 전차들을 보낸 바람에 스물일곱 대의 DD전차들이 상륙도 못하고 가라앉아 버렸다.[* [[파일:attachment/funnytank10.jpg|width=100%]]사실 해상에서도 기동이 가능하게 전차 주위에 캔버스로 만든 공기 튜브와 프로펠러까지 장착하였으나, 오마하 해변의 강한 파도로 인해 캔버스 튜브가 찢어져 침몰해 버렸다. 그래도 무사히 상륙한 세 대의 DD전차들은 보병들의 방패막 역할을 해 주며 독일군의 참호와 벙커에 포격을 가해 제 역할을 충분히 다하였고,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84598|상륙했던 보병들도 "그 전차들이 우리들을 구했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이로 인해 연합군의 전략이 동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전차 상륙에 실패했고, 캐나다군은 성공했다. 골드 해변에 상륙한 영국군은 한 시간 늦게 밀물 때 상륙한 덕에 오마하 해변의 1/10도 안 되는 피해로 상륙에 성공할 수 있었다. 미군 지휘부는 오마하[* 본래 오마하는 미국 네브래스카 주의 한 도시 이름으로, 원래 그 지역에 거주하던 부족의 이름이었다. 흔한 미국 도시 이름으로 남을 뻔했지만 코드네임 하나 때문에 피로 물든 전장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여담으로 당시 핵폭격기 생산 기지 역시 진짜 오마하에 있었다.] 해변을 서쪽부터 동쪽으로 에이블, 베이커, 찰리, 도그 그린, 도그 화이트, 도그 레드, 이지 그린, 이지 레드, 폭스 그린, 폭스 레드로 구성된 총 10개 구역으로 구분하여 병력을 상륙시켰는데,[* 이때 오마하 해변의 강한 조류와 파도 때문에 대부분의 상륙정이 목표 지점과 동떨어진 곳에 상륙하여 작전에 혼선이 가중되었다.] 이 중 폭스 그린과 이지 레드 구역에 상륙했던 미육군 29보병사단 116연대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일단 상륙 전에 각종 고기, 소시지, 계란 등 사기를 높이려고 제공한 고열량 아침 식사가 안 그래도 잔뜩 긴장감에 찌들어 있던[* 실제로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호전]]에선 공세 직전에 몇몇 병사들이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토하기도 했다. 죽음의 공포만으로도 병사들이 토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병사들에게 [[파도]]가 심한 바다에서 심각한 [[멀미]]를 유도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상륙 직전 장면에서 몇몇 병사들이 토하는 장면의 원인이다. 그러다 상륙주정의 문이 열리자마자 엄청난 기관총 세례를 버티지 못하고 옆의 바다로 뛰어내린 병사들은 멀미에 체력이 바닥이 난 데다가 무거운 군장을 매고 있었기에 익사한 사례가 많았다. [[MG42]][* 기본 세팅 분당 1,200발의 연사력. 즉 '''1초에 스무 발'''. 거기에 스프링식 완충 장치가 달린 전용 삼각대 라페테 42에 올리면 반동까지 지극히 적어진다.]의 화력을 참고한다면 많은 병력이 한 번에 돌격해도 돌파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독일군 토치카 정면에 상륙하는 불운을 떠안았던 미 29보병사단 116연대는 상륙주정의 문이 열리자마자 기관총 세례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어떤 중대는 중대원 198명 중 상륙 개시 5분 뒤 단 두 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실제로는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최초 상륙주정의 인원들은 문이 열리고 내려서 어느 정도 걸을 때까지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그건 사정거리 내에 미군이 들어올 때까지 독일군이 기다렸던 것이고, 이윽고 사정거리에 도달하는 순간 수많은 [[StG44|소총]]과 [[MG42|기관총]], 그리고 [[교차사격|방어선 양단에 각각 설치된]] 단 2문의 [[8,8cm FlaK|8,8cm 포]]의 일제사격에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곧이어 바로 후속 상륙주정들을 보내는데, 그때부터 위의 사례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오는 지옥이 펼쳐졌다. 상륙 직전 함포의 지원사격과 폭격기의 폭격이 가해졌지만 큰 효과를 내지 못한 바람에[* 함포 사격은 포격 시간 자체가 너무 짧았던데다 화력 자체도 불충분했고, 폭격기는 방어진지를 한참 지나 후방에다 폭격을 해버렸다.] 독일군에게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고 진지의 피해도 거의 없었지만, 미군이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바람에 이런 일이 생겨버린 것. 사실 알았어도 별 도리가 없었다. 무조건 정시에 정해진 인원을 상륙시켜 점령하는 것이 작전의 주안점이었으니까. 이날 미군은 오마하 해변에서만 약 3,000여 명의 사상자(전사, 부상, 실종)를 내고 말았다. 엄청난 전사자를 낸 미군은 정말로 어찌어찌하여 도달한 독일군 벙커 앞에서 포기 직전까지 몰리고 있었으나, 살아남은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모아 해안 출구를 공략하고 제16연대 [[연대장]]이었던 조지 테일러(George A. Taylor) 대령이 상륙하여 지휘권을 잡고 해군의 포격지원을 받아가며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이후에도 내륙지역과 해안 출구에서 전투가 이어졌으며 최종적으론 상륙 당일에 원래 계획했던 8km에 훨씬 못미치는 2.5km의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이때 상륙작전의 지휘를 맡은 [[오마 브래들리]]는 오마하 해변에서의 엄청난 피해로 인해 이곳을 포기하고 유타 해변 등에 상륙을 집중시키는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 아무튼 주노, 유타, 소드 등 다른 해변에서는 먼저 투입된 공수부대가 독일군의 포 진지를 잘 차단하였고, 별다른 저항도 없어서 대부분이 큰 피해 없이 상륙할 수 있었다. 심지어 주노 해변에서는 캐나다군이 독일군의 저항을 단 15분 만에 분쇄한 뒤 다른 해변의 독일군을 우회하여 공격하기까지 하였다.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는 유타 해변의 후방에 강하한 101 공수사단 이지 중대가 본대의 원활한 상륙을 위해 독일군의 포 진지를 공격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연합군 수뇌부는 항공정찰이나 레지스탕스의 보고 등으로 오마하 해변이 방어 준비가 비교적 잘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캉을 공략할 예정인 영연방군의 상륙 지점과 코탕탱 반도를 차단할 미군의 상륙 지점 사이가 너무 벌어질 경우 독일군이 그 사이로 파고들어 해변을 노릴 수 있었기에 손실을 감수하고서 오마하 해변에 병력을 밀어넣기로 결정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